대구 수성못에 미켈란젤로가 있다
수성못 is
분지로 둘러싸인 대구시민에게는 최상의 휴식처가 아닐 수 없다
1940년 대구 부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65년 건설부고시로 수성못 일대를 유원지로 결정 고시
1982년 유수지역, 운동지역, 휴양지역, 특수지역으로 편입 및 관리 지구로 확정된 곳.
보트놀이도 즐길수 있고, 정감 가는 오리배도 있다.
수성랜드가 자리잡고 있어서 다양한 놀이 기구로 가족단위 소소한 나들이 하기 딱 좋은 곳.
평온한 어느 저녁 산책길
며칠 전 저녁. 10여 년 만에 수성못 산책을 했다.
비가 온 뒤라 도심이 고요하니 참 좋았다. 이렇게 평온할 수가..
평소와 달리 차를 놔두고 반대편길로 걷다가 수성못 진입로를 찾아 들어갔다
수성못 메인 거리가 아닌 들안길 쪽 으로 쭉 걸어가다 우측으로 진입길이 있었다.
그냥 소소,사소한 계단
미켈란젤로 설계 "라우렌치아나도서관이 떠올랐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순간, 뭔가 모를 찡한 감동이 느껴졌다.
이태리 피렌체에 있는 미켈란젤로 설계 "라우렌치아나도서관이 떠올랐다."
미켈란젤로의 삶을 아시는 분??
계단과 장애우들과 여러 가지 모든 상황들이 공존할 수 있도록 비탈길을 만들어 놓았다
모두가 함께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설계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 분은 아마 미켈란젤로의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을 접하시지 않으셨을까?
아님 미켈란젤로의 삶을 아시는 분?? ^^ (단순 저의 뇌피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피렌체 라우렌치아나
피렌체 중앙시장 쪽으로 가다보면 뭔가 성당 같지 않은 성당 하나가 있다
피렌체 최초 르네상스 성당인 Basilica di San Lorenzo산 로렌초 이다.
성당의 부설공간인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 있다.
산 로렌초 부설 공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계단을 올라와 창가에 들어오는 밝은 햇살로 눈이 부셨다.
아무 생각 없이 카펫을 밟으며 중앙으로 걸었다.
500여 년 전 그 당시에도 그들도 이런 느낌이었을까?
걷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툭 툭 친다.
"please, walk sideways '(옆으로 걸어주세요 ^^;; )
헉!!! 문화재 훼손으로 신고당할 뻔 ㅋㅋ
그럼 바리 게이터를 쳐 놓던지..... 다들 조심하시길...
의자측면에는 도서목록이 적혀있다
저기 않아서 1500년도 지식인들은 지식 탐구를 하였겠지요.
피렌체에서 활동했던 많은 화가들의 손 떼도 묻어있었겠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보티첼리, 바사리 , 조각가 첼리니 등등
로마의 판테온은 피렌체 건축에 있어서
Santa Maria del Fiore(산타 마리아델 피오레) 돔을
비롯하여 피렌체 건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Michelangelo Buonarroti 미켈란젤로 부 오나르티
화가로서 본인만의 작품세계에 대한 갈증이 심했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격차는 체념이 아니었을까?
라우렌치나 도서관에는 미켈란젤로 본인의 꿈과 원하는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었을 듯하다
이 시대의 화가는 작가, 화가로서의 본인의 자유의 지대로 작품활동을 하지 못하였다
특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조각가로서의 회화를 그것도 천장에 그린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강압 섞인 권유로 실명위기까지 가면서 직업에 대한 회의도 많았을 것이다.
화가로서 본인만의 작품세계에 대한 갈증이 심했지만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의 격차는 체념이 아니었을까?
후대에는 힘이 없어서 또는 무지해서 부당한 자유를 픽밥 받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도서관 내에 평민들도 밟을 수 있는 계단을 설계한 것이 아닐까...
금융업으로 성공한 메디치가는 고리 대금업자라는 꼬리표를 씻기 위해 문화예술에 투자를 많이 하였다 한다.
그에 따라 사회의 공헌의 이미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미켈란젤로는 그걸 명분으로 시민계층에게
무지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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